[기자수첩]인스타그램형 엔지니어링
상태바
[기자수첩]인스타그램형 엔지니어링
  • 조항일 기자
  • 승인 2024.04.26 13:35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항일 기자
조항일 기자

소득이 높아질수록 여가생활도 고도화되는게 일반적이다. 비용적 측면도 있겠지만 형태 또한 그렇다. 돈벌이가 적을 땐 누군가가 만들어낸 콘텐츠를 그저 받아들이는 데 만족하지만 벌이가 많아지면 스스로 행위를 하는 것으로 옮겨가게 된다. 먹거리도 돈 없는 사람들은 인스턴트를 먹지만 높은 소득의 사람들은 직접 만들어 먹지 않던가.

다만 시대의 소득이 높아졌다해서 모두가 그걸 향유할 수는 없다. 그걸 우리는 빈부격차라 한다. 요즘에는 SNS가 발달해 얼마든지 가난을 포장할 수 있다. 특히 SNS의 대표격으로 꼽히는 인스타그램은 모두가 수백만원짜리 호텔에서 숙박을 하면서 디너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러한 이미지에 현혹돼 평범한 일상에 자괴감을 느끼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면서까지 그들을 추종한다. 철학 없이 보여지는 것에 민감한 사회가 인간을 어떻게 파멸로 이끄는가를 잘 보여주는게 바로 한국의 인스타그램 문화다.

우리나라의 엔지니어링역사가 올해로 50년을 맞이했다. 1973년 기술용역육성법이 제정된 이후 업체수 60여개, 수주실적은 20억원이 전부였던 시장은 지난해 기준 8,000여개를 넘어서고 10조원 가까이로 성장했다. 가히 엔지니어링판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만하다.

외형적 성장과 달리 엔지니어링업계의 현실은 차갑다. 건설엔지니어링은 여전히 부정부패나 정경유착과 한 단어처럼 붙어다니면서 건피아, 건폭, 토건족으로 불리고 있다. 업계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의 사회적 대우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이상기후로 인해 인간의 예상범위를 넘어선 천재지변은 매년 엔지니어링업계를 두려움에 떨게하고 있다. 사망자라도 나오면 정부는 설계와 감리업체를 둘쑤셔서 여론의 희생양으로 삼는다. 그저 큰 비나 태풍이 오지 않도록 기청제를 지내야할 판이다.

안전제일주의가 팽배하지만 정부는 기초과학을 버리고 10대 선진국에 맞는 인프라 외형을 갖춰야한다는 생각에 골몰해 있다. 지난해 서울시가 발주한 잠수교 전면 보행화 사업 국제공모는 정부의 넌센스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디자인에만 신경을 쓴 나머지 안전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 어디 서울시 뿐이겠는가. 인프라의 안전보다는 그저 예쁘고 인스타그램 명소가 되길 바라는 지자체 공무원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된 작품이 수두룩하다. 자연스레 물리역학을 공부하지 않은 건축디자이너들이 토목전문가들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화려한 전대미문의 한국형 인스타그램 엔지니어링이 탄생한 이유다.

당연한 얘기지만 기초가 없는 아름다움은 언젠가 무너지게 돼 있다. 강력한 군사력이 없는 평화는 거짓된 평화다. 문화 융성을 이끌어 성군으로 포장된 선덕여왕의 신라가 사실은 주변 국가의 위협으로 존폐기로에 놓여있었다는 것을 잊지말아야 한다. 차나칼레 대교를 향한 찬사의 대상은 외형적 아름다움이 아니다. 고난도 해역에서 초장대교량을 만들어낸 한국 토목공학의 힘이 인정받은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민태산 2024-04-29 15:34:34
엔지니어링업계는 여느 시공사들처럼 외부나 민간에 광고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이상으로 발주처들에게 광고 아닌 영업비용이 들어간다

심미학적으로 예쁜 구조물과 시설물이 운좋게도 끝까지 치명적인 결점이 드러나지 않으면 지역명물이 되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포토존이 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나 운이 없게도 구조적 결함이 드러나거나 인명사고라도 나면 그때는 랜드마크가 되지 못한 책임을 물어 시공사나, 설계사, 건설사업관리업자를 찾게 된다

그때는 원치 않아도 외부와 민간에 모습을 드러낸 채, 누군가를 대신할 조리돌림을 당해야한다
외부에 포지티브한 광고는 할 필요가 없다해도, 네가티브한 광고는 불가항력으로 하게 된다

갑.을.병.정 중에 을도 아닌거 같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