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인프라 소중함, 지옥과 천당을 오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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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인프라 소중함, 지옥과 천당을 오가다
  • 조항일 기자
  • 승인 2019.04.09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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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항일 기자

지난해 정부의 2019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가장 몸살을 앓은 분야는 SOC 예산이다. 470조원대의 사상 초유의 ‘슈퍼예산’이 책정됐지만 SOC 분야는 전 분야중 거의 유일하게 예산이 줄어들었다.

수년째 SOC 예산이 축소기조를 보이고 있던 가운데 문재인 정부가 토건분야를 ‘적폐’로 낙인 찍은 것이 결정적이었다. 예산심의안 가결 이전에 극적으로 약 1조원 늘어났지만 그래도 18조원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 등 SOC 선진국은 우리와 달리 유지·보수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전체 SOC예산을 훨씬 상회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붓고 있다.

먼저 미국은 2017년 한해에만 4조6,000억달러, 한화로 약 5,20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인프라 보수비용으로 책정했다. 일본은 2013년 유지․보수 비용에 5조1,000억엔을 책정한데 이어 오는 2022년 7조3,000억엔, 2033년 7조9,000억엔 등으로 책정할 예정이다.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SOC 전체 예산이 아닌 유지․보수 비용이다.

지난주 강원도 고성·속초 산불은 그야말로 ‘화마’에 가까웠다. 수천명의 재난민이 발생한 것은 물론 530ha의 산림을 불태웠다. 우리나라 재난 역사의 한페이지를 또 장식할만한 사고다.

아직까지 명확한 화재 원인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로만 살펴보면 한국전력이 관리하는 전신주 개폐기(전기 스위치 역할을 하는 장치)의 노후화가 발화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한전의 배선 유지․보수 예산이 줄어들었다는 데이터까지 들고 나오고 있다.

이에 한전에서는 관련 예산을 집중적으로 늘리고 있고 안전점검을 이미 실시했다며 해명하고 있지만 이미 화마가 쓸고간 자리가 원상복구 될리는 없다. 결과적으로 불은 낫고 인명․재산피해도 발생했는데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불행중 다행으로 이번 화재가 예상보다 일찌감치 진압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역할이 컸다. 재난급 화재에 정부는 전국의 소방서에 출동명령을 내렸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전국에서 동원된 소방차들은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을 통행한 뒤 또 다시 동해고속도로 일부를 지난 후 국도 7호선을 타야만 고성․속초에 도착했을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화재사고를 감안할 때 피해가 더 커졌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생활인프라SOC라는 말을 만들어내면서까지 토건SOC와 구별지을 필요도 없다. 토건SOC도 넓은 의미의 생활인프라다.

역시나 예상대로 정치권에서는 이를 또 여야 책임론으로 부상시키고 있다. 진정으로 국민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이를 당장 중단하고 사후 또 다른 사고가 나지 않도록 머리를 맞대야 한다. 정치권의 씁쓸한 모습에 강원도의 화마가 이제는 국민들의 마음에 분노라는 이름으로 옮겨붙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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