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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설명해주는 남자들-⑤]미스터선샤인에서 전차는 누구꺼죠

기사승인 2018.10.19  14: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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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종영된 드라마 중 유일하게 격변하는 구한말을 다룬 '미스터 션샤인'. 필자도 너무 재미있게 봤다. 매번 보면서 '구동매'의 영리함과 '유진 초이'의 연기력에 감탄을 보내면서 말이다. 드라마 2회에서는 한성에 전기가 공급되고 전차가 다니는 격변의 시대상을 드라마틱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한다.

1884년 조선은 에디슨 전기회사에 한성에 전기를 활용하고 싶다는 서신을 보내고 1886년에 전등 설비를 위한 계약을 맺는다. '에디슨'은 기술자 '메케이'를 조선으로 보내서 건청궁 앞 우물과 향원지 사이에 발전소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1887년 1월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전기발전소인 전기등소를 경복궁 안에 완공해 최초 점등을 했으니, 이때가 '에디슨'이 전기를 발명한 후 약 8년만의 일이다.

1898년 1월에는 서울에 최초로 전기회사 '한성전기회사(漢城電氣會社)'가 설립됐으며, 서울 시내의 전등, 전차, 전화 사업의 시설 및 운영권을 갖게 되고 1899년에는 최초로 전차가 운행된다.

이 한성전기회사는 당시 조선의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 근대화 노선을 추구하며 설립됐다. 그러나 운영을 위한 자본과 기술 부족으로 미국 측 도움을 받았고, '알랜'의 추천으로 미국인 '콜브란(Collbran)'과 '브스트윅(Bostwick)'과 접촉을 한다. 한성전기회사의 사업은 모두 그 둘과 맺은 도급 계약으로 추진됐다.

하지만 한성전기회사는 이후 맺어진 두 미국인과의 도급 계약에서 공사비를 지급하지 못했다. 즉 많은 사업비를 콜브란에게 빌렸기 때문에 이미 회사의 모든 재산이나 특허권은 콜브란에게 신탁했고, 채무 상환 만기일을 연장해주는 조건으로 각종 이권을 얻어갔다. 결국 회사소유권 일부를 그들에게 넘겨줬으며, 1904년 7월에 한미전기회사라고 회사명을 바꾼다. 5년 뒤인 1909년 '콜브란'은 회사를 일본의 국책회사 일한와사회사에 매도함으로써 회사는 소멸한다. 회사의 전차사업은 1898년에 착공하여 1899년 5월 개통한 남대문∼홍릉 간 전차노선 부설사업이 있다. 이 노선은 1899년 12월에 개통된 종로∼용산 간 전차노선과 연결됐다.

당시에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미국인들은 왜 PPP가 아닌 민영화의 방식으로 '한미전기회사'를 설립하고 운영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격변하는 시대 분위기는 외국자본 입장에서 투자하기에 매우 위험한 요소임에도 말이다.

알다시피 미국과 영국의 법체계는 영미법, 관습법 혹은 보통법(Common Law)으로 우리나라 및 프랑스, 독일과 같이 유럽 대륙 제국에 의해 형성된 대륙법(Civil Law)과는 그 특성이 상이한데, PPP의 발전사도 그만큼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 영국과 미국은 대륙법 국가와는 다르게 기본적인 인프라 서비스를 민간 기업이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 당시에는 민간 기업이 자본을 조달해 인프라를 건설하고 운영했고 사람들로부터 요금을 징수했다. 다만 정부로 부터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허가와 관련된 규제를 받았다. 다시 말해 PPP와는 다른 형태의 법적인 Framework 하에서 운영됐기 때문에 정부와의 계약도 존재하지 않아 언젠가 사업을 기부채납(Transfer)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종료될 때 쯤, 영국에서는 10년 만에 치러진 1945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압승하면서 전기나 가스, 운송 분야 사업을 국유화하고 복지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는 그 전까지 일반적이었던 민간 기업의 인프라 서비스 제공 방식에 변화를 의미한다.

미국에서도 1933년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 이후에야 지방 정부에 의해서 자금이 조달된 인프라 사업이 활성화 됐다. 당시엔 지방공기업 (Government Owned Company 혹은 State Owned Enterprise, SOE)에 의한 채권 발행으로 자금이 조달되었다. 이러한 형태로 시작된 사업이 뉴욕과 뉴져지의 Port Authority, 워싱턴의 Metropolitan Area Transit Authority가 있다.

파나마 운하 사업의 경우, 1880년대 프랑스인들이 처음 운하 건설을 시행하다 잠정 중단된 뒤, 1903년 미국이 PPP와 비슷한 형태로 재개한 사업이다. 이 사업을 위해 미국은 파나마의 독립을 지지하는 한편 운하건설을 위해 당시 1000만 달러를, 그리고 운하 건설 이후 매년 25만 달러를 미국 정부가 파나마 정부에 지급하되 운영권은 가져오는 계약을 맺는다. 즉 민간 자본이 아닌 타국 정부 자본을 활용한 사례로 사업구도는 PPP와 비슷했다. 반면, 1900년대 초 조선에 들어온 두 미국인에게는 민간 자본을 이용한 PPP라는 개념 자체가 일반적이지 않았고 당연히 인프라 사업은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당연히 시간이 지날수록 바뀌었다. 영국에서는 1980년대 보수당의 마가릿 대처가 대처주의 (Thatcherism)을 내세우면서 시행한 영국식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1945년 이후 노동당이 국유화 했던 기업들을 다시 민영화하게 된다. 여기서 민영화는 PPP와 다르다. 1990년대 초 서비스의 사용료를 사용자가 직접 내는 User-pays형태의  인프라 서비스는 모두 민영화 됐다. 하지만 여전히 영국 보수당에서는 공공자금으로 제공 중인 보건, 교육, 교도소에도 민간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때 나온 것이 PFI (Private Finance Initiative) 이다. 이런 형태의 Government Pays PPP 개념은 1997년 보수당의 집권을 끊은 노동당의 토니블레어 총리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확고해졌고 비슷한 형태의 사업모델이 호주나 캐나다에서도 발전됐다.

미국에서도 영국과 같이 1990년대 들어서 PPP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995년 버지니아주에서 가장 먼저 PPP법을 통과시킴으로써 그전까지 면세 국채로 진행되던 인프라 사업의 형태가 변화한다.

대륙법계 국가의 PPP 발전사는 어땠을까. Concession (User Pays PPP) 형태의 사업은 이미 1782년 프랑스 파리에서 수도공급 사업의 형태로 존재했다. 지방자치단체의 수도 공급에 있어서 이와 같은 Concession 사업 형태는 1850년부터 1910년에 점차 중요해지면서 1910년부터 1970년까지는 지방정부가 자금을 조달하여 운영하는 것이 점차 일반적이 됐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정부재원으로 만들어진 인프라 서비스를 민간 기업에 장기 운영 임대하는 Affermage 형태의 계약이 점차 중요해졌다.

1885년 즈음 수도공급을 위한 지방자치단체 급의 Concession은 이미 벨기에, 독일 및 이탈리아, 스페인에서 활용되고 있었으며 1881년 프랑스 회사 Generale des Eaux가 수도공급을 위한 Concession 계약을 수주하기도 했다. Concession은 철도, 트램, 항만 및 가스, 전기 등과 같은 다양한 Sector에 이용되고 프랑스의 이해관계로 1854년 시행이 수에즈 운하는 대규모 Concession 사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후에 대륙법계의 국가들은 보통법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기존의 User pays PPP 형태의 사업 모델 이외에 Government pays PPP 사업 모델도 발전시킨다. 2004년 프랑스에서 관련법과 Central PPP Unit이 재정사업과 Concession 사업 사이의 간극을 메꾸기 위해서 만들어졌고, 스페인에서는 2000년대 초 기존의 Concession 법을 이용하여 Government Pays PPP를 수용하다 2011년 PFI 형태를 위한 공공조달법을 새롭게 확장해 발표했다. 칠레에서도 Concession 법을 확장하여 Government Pays PPP도 사용할 수 있도록 변경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4년 8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자유치촉진법」 제정을 계기로 사회기반시설의 건설·운영에 민간투자방식이 도입됐으며, 1998년 12월 「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으로 전면 개정되면서 많은 사업들이 민간투자방식으로 추진됐다. 2005년에는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민간 투자법」으로 개정하여 그동안 추진해 오던 수익형 민간투자사업(BTO) 방식뿐만 아니라 임대형 민간투자사업(BTL) 방식도 도입했다.

이렇게 PPP라는 개념은 모든 국가에서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은 사업모델이다. 신자유주의를 대표하는 사업모델로 자본주의가 살아있는 한 지속될 모델이기도 하다. PPP사업의 특성상, 수십 년 장기적인 추적/관리가 필요한 만큼 앞으로도 발생할 사업 형태상의 문제들을 보완해가면서 더욱 가치 있는 사업모델이 되길 기대해보는 것은 어떨까.

대림산업 김재연 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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