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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불손한 컨퍼런스, 전문가들이 무시당했다

기사승인 2018.09.11  19: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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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시절 경영학과 수업이 떠올랐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PPT 속에 표와 글자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시절과 다른게 있다면 강단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내노라하는, 화려한 직책의 외국인 전문가들이었을 뿐.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 인프라 모색 컨퍼런스'에 대한 얘기다. 무려 4시간에 달했던 외국인 전문가들의 발표는 SOC에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들어봤을만한, 너무나 당연할 것 같은 얘기들만 쏟아졌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축사로 시작된 행사는 기념촬영 시간을 포함해 본 행사가 시작되기 전에만 30여분이 소요됐다. 기다림 속에 강단에는 SOC 분야에 관심이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외국 전문가들이 올랐다. 그러나 귀가 번뜩일만한 '아이템'은 없고 어디서 들어봤을 법한 진부한 얘기만 계속됐다.

이날 행사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버나드 뮬러 전 UN 유럽경제위원회 공동의장을 보자. 그의 핵심 내용은 ‘지속적 인프라 투자, 민간재원을 활용한 사회 인프라 확충, 새로운 기술과의 융합 필요성 제시’로 요약된다. 허울 좋은, 옳은 얘기만 나열한 듯한 이 말들은 현 정부에서 이미 오래전에 나온 듯 하다.

또 버나드 뮬러가 사용한 ‘사회 인프라’라는 말도 최근 우리 정부가 발표한 생활밀착형SOC와 사실상 같은 의미다. 정부에서 했던 말들이 외국인 전문가의 입에서 ‘중언부언’된 것 같다. PPP사업에 대한 언급도 마찬가지다. 버나드 의장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이미 향후 SOC 분야에서 지향되야할 방식은 PPP사업이라는 것 쯤은 알 수 있다.

버나드 의장이 타겟이 됐지만 뒤를 이어 발표한 외국인 전문가들의 발표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문가들의 초점은 향후 글로벌 인프라 시장의 성장, 규모에 대한 미래지향적 성격에 머물렀다. '벤치마킹' 시도를 해볼만한 정보는 얼마 없고 대부분이 인터넷 검색창만 뒤져 보면 알 수 있는 뻔한 내용들이었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었던 것은 전문가들의 발표 이후 진행된 국내 전문가들의 공개토론이었지만 이 마저도 형식적이었다. 그저 외국인 전문가들의 발표 토대 위에, 토론이기라기 보다는 그저 한번 더 내용을 답습하는 듯 했다.

최근 정부 기조가 SOC 예산의 축소로 가닥을 잡은 가운데 이날 행사를 찾은 대부분의 업계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좀 더 생산적이거나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실용적인 내용을 원했을 것이다. 이날 컨퍼런스는 단지 국가 주도의 SOC의 중요성과 각 국가의 실태 확인에 머무른 측면이 강하다.

문화·지역적 역학관계가 다른 만큼, 우리나라에 대한 충분한 이해 관계가 되지 않았을 그들에게서 4시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해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시간을 할애해 자리를 찾은 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예의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번 컨퍼런스는 불손하기까지하다.

방법론적 접근이 어려웠다면 글로벌적 관점에서 SOC가 확대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이를 축소하고 있는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지 컨퍼런스 시발점에 대한 논의 정도는 진행됐어야 한다. 컨퍼런스가 끝날 때 까지도 이러한 고민은 없었다.

외국인 전문가들에게서 이러한 자문을 통해 실제 정책으로 연결지을 수 있는 영향력이 가장 큰 김현미 장관은 자리를 떠난지 오래였다. 마치 이러한 뻔한 얘기가 오갈줄 알았던 듯 인사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구체적인 국가전략을 논하기 보다는 선진 인프라 기술을 가진 나라의 전문가들 목소리에 더 집중됐던 이번 컨퍼런스에 또 한번 국민의 혈세만 낭비된게 아닌가 싶다.

조항일 기자 hijoe77@engdaily.com

<저작권자 © 엔지니어링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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